☀️ 이 여름을 지나가며 ☀️ by 유랑

세계 최고 기온이 하루가 멀다하고 경신됐던 이번 여름, 어김없는 한국의 폭염 속에서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은 뚜렷한 생존의 감각이다. 정확히는 길을 잃은 생존, 생존의 위기에 대한 감각. 처음 이와 같은 위기의 감각을 느낀 이래로 나는 무언가를 했다, 혹은 하지 않았다. 아니다. 어떤 것은 바뀌었다, 그러나 거의 바뀌지 않기도 했다. 나는 의욕과 무기력, 변화와 정체, 희망과 절망 사이를 매일, 혹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부유한다. 그러다 돌고 돌아 한 가지 잔인한 결론에, 어쩌면 이번 여름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살만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모호하듯 분명한 사실에 이르고 만다.

어쩌면 절망은 사치일 것이다, 하지만… 😢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종말론적인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미래 없음’의 정서고, 나는 2050년을 기준으로 내 삶을 계획해야 한다고 믿고, 방심하면 쏟아지는 허망함에 때로는 지고 때로는 싸워가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는 것으로 최선을 다해 무마한다. 그러나 모든 무마가 그렇듯이 그것은 임시변통일 뿐이며,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낀 현재는 늘 반쪽짜리 존재감으로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는 기후 우울에 대한 여느 증언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절망을 극복하자”고 말하기 이전에 “나는 절망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혼자 절망하고 있을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며.

우리에게 미래는 정말 없는가 🔚

이토록 지겨운 여름을 견디기 위해 두리번거리던 와중, 리베카 솔닛의 글 <왜 기후 우울은 사치인가>를 발견했다. 내 입장에서는 상처에 소금을 휙 뿌리는 것만 같은 제목이었고, 솔닛의 글이 나를 절망에서 획기적으로 꺼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인정하기 싫지만, 몇 문장은 내 절망의 일시 정지 상태에 기여했다. 나의 ‘미래 없음’ 문제에 답하듯 솔닛은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것과 미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실제로 미래가 정말로 없는 것은 아니며, 미래가 없다는 이유가 절망과 비관주의의 핑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 미래를 결정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미래는 결정되지 않는 형태로 ‘존재’한다. 미래는 어두컴컴한 밤을 뚫고 빛처럼 오는 게 아니라 이미 여기에 우리와 함께, 우리에게 있다.  

그다지 멋있지 않은 저항을 지속하기 위하여 ❤️‍🩹

그렇다면 ‘미래 없음’의 문제는 ‘만들어지고 있는 미래’의 문제로 전환된다. 조금 나아졌지만 속시원한 결론은 아니다. 물론, 솔닛의 주장도 이게 다가 아니다. “우리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불확실성의 가능성, 즉 결과가 아직 완전히 결정되지 않았으며 우리의 행동이 결과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불확실성의 가능성, 그게 희망의 본래 얼굴이다. 확고하고 단단한 게 아니라, 불안과 의심 한 가운데서 간신히 싹트는 것. 

이러한 희망은 기실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며 패배를 감수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안다. 이 모호한 희망이야말로 우리가 믿을 구석이며, 스스로 종말이라는 “관에 대못을 박는 것”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불확실성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 또한 이미 나와있다는 걸. 물론, 변화는 항상 생각보다 느리고 이뮤레터를 쓰는 앞으로의 시간 동안 나는 또 보란듯이 절망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내가 살아갈 미래를, 무덥지만 여전히 아름다울 다음 여름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다. 그 미래가 내게 도래하기를 - 우리의 현재에서 피어오르기를 - 온 마음으로 바라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엉엉 울면서 이 미약하고 애매한 투쟁을 지속한다.

두번째 이야기